[칼럼-송유영 메디슨그룹 회장] “지켜야 하는 우리 문화의 잔칫상”
출산율 하락으로 친척도 없어진다.
정연우 기자 | 입력 : 2023/02/28 [09:10]
세상을 살면서 치러야 할 큰 행사라면 인륜지대사인 결혼식, 그리고 부부간의 금실 아래 태어난 아이의 백일잔치, 돌잔치, 연로하신 부모님의 환갑에 칠순, 팔순 등이 있다.
그리고 장례식이 있는데 모든 잔치의 요소는 해당 당사자도 중요하지만, 친척·동창·직장 동료 등 지인들의 참여가 더욱 중요하다. 이래서 나온 말이 자녀의 결혼식은 부모의 사회적 현주소이고 부모의 장례식은 자녀의 사회적 위치라고 말한다.
축하 하객이나 조문객들의 문전성시가 살아온 모든 것을 증명하는데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애경사는 꼭 챙겨주는 것이 한국문화의 정서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케케묵은 과거 이야기를 안할수 없는 게 잔칫집에 대해 설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 잔칫집은 우선 마당에 천막을 치고 한쪽 끝에는 가마솥을 건다. 또 다른 화덕에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침하고 동해안에서 공수한 대형 문어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도마 위에 올라온다.
지역마다 특성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보면은 빠질수 없는것이 잡채와 홍어, 김치며 소머리 국밥이 단골 메뉴로 나온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지금은 시중에서 전문 식당으로 자리 잡아 일반인들의 입맛을 돋우니 모든 게 원조가 있는 법이다.
장례식장은 상조회사에서 일찌감치 출동하여 상주의 완장부터 제단과 음식까지 일사천리로 마련된다. 기껏해야 삼일장인데 작고한 시간이 밤이면 불과 2일 만에 장례가 치러지는 것이다. 일가 친척이 도착해서 얼굴 마주 보자마자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니 점차 애경사의 분위기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자. 과거처럼 요리를 주부들이 전담하던 시대는 지났다. 세탁물에서 설거지까지 주부들의 편의가 늘면서 이제 주부가 없어도 남편이나 남자들이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
연령층이 젊어질수록 이런 추세는 더 심해진다. 평생 김장 한번 안해 본 주부가 있는가 하면 제사가 무엇인지 하다못해 라면도 제대로 못 끓여 컵라면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을 통한 레시피로 잠시 반짝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우유나 빵으로 식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되었고, 현재의 60대가 설 자리는 경로당도 못 가는 처지에 공원이나 등산으로 시간을 때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잔칫집의 음식 조리는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조리과정이 전수되는 일종의 사설 학원이다. 음식 문화와 예절, 미풍양속에서 선조들의 지혜와 철학을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데 가령 가래떡을 만드는 과정이나 떡 방아로 찰떡 떡메를 치는 풍경은 우리네 한국인 정서에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편리함을 추구하다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돌아볼 일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하의 뜻을 전하는 과거 잔칫집이 유독 그리운 것은 오늘처럼 쌀쌀한 겨울날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먹는 것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행복이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출산율로 인해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멀어져만 가고 그래서 친척이라는 말이 어색해지기 시작한다.
형제가 있어야 아래로 삼촌·고모·이모가 있는 것이고 그래야 이종·고종 사촌이 있는 것인데, 지금같은 추세라면 적어도 20년 후에는 찾아올 친척도 없고 잔칫집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에서야 볼 수 있게 된다.
한민족의 정서는 화합과 배려가 넘치는 정다움이 있었다. 의복과 음식은 모든 제례 절차에 예절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은 보기 드물지만 앞으로는 아예 볼 수 없을 잔칫집은 마냥 편리함만 찾을 것이 아니라 점차 복원해야 할 우리네 소중한 자산이다.
필자 또한 사람이 산다는 게 별것 아니라는 말을 전한다. 누구나가 어느 가정마다 돌잔치와 칠순을 치르다 보면 뻔한 식순에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 내듯 한정된 시간에 맞춰 정신없이 진행된다. 사회자의 터무니없는 웃음 강요에 분위기상 어색한 웃음을 보여야 하고 이제 돌잡이 아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오두방정에 소란이 극치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둘러 업고 무대를 돌아다녀야 하며 단상의 사회자가 부르는 대로 고함을 지르다가 적절한 때에 팁이라도 쥐어줘야 분위기가 안 깨진다. 평상시 찾아보지도 않았던 자식들이 갑자기 효자·효녀가 되어 한복에 짙은 화장까지 칠한 모양새는 과연 부모님이 기뻐하실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곧 사라질 풍경이다. 그렇다면 대안이 없을까. 현대화된 편리함에 잔칫집이 사라지는 것을 당연한 듯 잊어야 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적어도 주부라면 기본적인 음식은 할 줄 알아야 하고 함께 돕는 남자들의 친절한 배려가 더 정다운 것이지 마냥 손도 까딱 안 하고 전화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비록 아파트 단지가 주를 이루다 보니 가마솥은 못 걸더라도 대형 뷔페 대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넓은 공터를 공용시설로 마련하여 조리부터 무대까지 저가로 사용한다면 허례허식에 젖어 돈만 낭비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다 잃어도 우리 한민족의 정서나 조상들의 슬기까지는 잃지 말아야 한다.
24절기에 따라 미풍양속을 지켜가며 잔칫날은 서로 한데 모여 일손을 나눠주며 사는 맛을 지켜 가는 게 어떨까. 아파트 문만 닫으면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함께 정을 나누는 이웃으로 바꿔가는 길을 행정기관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든다면 고독사도 줄이고 없던 정도 생겨나지 않을까. 한마디로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
<저작권자 ⓒ 더연합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